티스토리 뷰

 

 

“어느 한 곳의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

 

  지난 12일 장애인법연구회에서 주관하여 열린 장애인법 국제 심포지엄에서 미국의 장애인법과 정책에 대해 발표한 존 워다시 변호사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위와 같이 인용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모든 곳에 정의가 있어도 한 곳의 불의가 있다면 그것은 정의를 위협하는 일이기에, 불의가 남아있는 한 “계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심포지엄은 한․미․일의 장애인 관련 법제와 정책을 논하는 첫 번째 세션과 실제 이러한 법제 들을 근거로 한 각국의 장애인 권리 구제 소송 사례 등을 논하는 두 번째 세션으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장애인법 제정 당시 미국 법무부 장애인권국의 국장을 역임한 존 워다시 변호사는 미국에 장애인법이 없던 시절 많은 일상적인 생활로부터 배제되었던 장애인들의 현실과 장애인법 제정 배경 그리고 변화를 묘사했다. 건물 내에는 물론이고 건물의 출입구에 시설 미비로 건물 출입 자체가 제한되고, 장애 어린이들에게 제공되지 않는 양질의 교육, 시설 문제를 비롯하여 어디든 당연시되는 비장애인과의 ‘분리’로 인해 더욱 확고해진 고정관념으로 장애인과 그 가족은 권리를 계속적으로 침해받는 상황이었다. 그랬던 미국에서 장애인법이 제정되면서 건축물 환경, 교통, 교육, 의료 서비스가 전면적으로 개선되었고, 장애인들이 “정당한 편의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가장 기초적인 변화는 사람들의 태도의 변화였다. 분리에서 통합으로, 정책의 기조가 변화하면서 장애인들이 정당한 편의제공을 요구할 수 있게 되자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기관에게는 그것이 나름대로 부끄러운 일이 되어 하루빨리 권리 침해 부문에 대한 개선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2부의 미국의 장애인 권리 구제 소송에 대해서 설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Diability Rights Advocates(장애인권보호, DRA)의 시드 월린스키 변호사는 법무부를 비롯한 지지기관들과의 탄력적인 협력, 그리고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권리 구제 사례, 그리고 높은 승소율의 비결에 대해서 설명했다. 무려 53년의 실무경력의 변호사의 노하우와 이야기는 장애인 권리 옹호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정을 대변하며 심포지엄 장 내의 참가자들을 골몰하게 했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일본의 히가시 토시히로 변호사는 장애인기본법, 장애인종합복지법, 장애인차별해소법을 비롯한 일본의 장애인 관련 법제의 제․개정 과정에 대해 매우 세밀히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장애인법 제․개정 과정에 꼭 참여하여 논의의 핵을 이루었고, 실제로 일본의 장애인법 제정 초기 단계에서는 장애인이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어떤 과정을 겪는지, 일일히 문서화하여 지역 생활에서 어떠한 사회적 장벽의 제거가 필요한지 고려했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 인권 관련 논의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인간이다

 

  이어서 발표한 공익인권법재단의 염형국 변호사는 헌법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찾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권보장의 근거 및 관점,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비롯한 현재의 법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아직 해결되어야 할 장애인 관련 정책의 향후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장애인의 신체기능손상의 문제로 장애를 왜곡하는 장애등급제, 그리고 2부에서 법무법인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가 설명한 장애인권리협약,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내용에 채 부합하지 사법절차에 관한 법률들, 그리고 7,193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 진정사건 중 6년간 구제된 단 1건의 차별 사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행위 능력을 침해하는 성년후견제를 개선하고 탈시설․자립 미지원, 절대빈곤, 그리고 착취, 폭력 및 학대에 노출된 장애인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는 일은 이것이 거창한 공약이어서가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옹호했던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 구호와 같이, 장애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법을 통한 평등 실현”이라는 표제에 걸맞게 한미일의 장애인 관련 법제와 소송 사례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미국, 일본 사례를 한층 더 심도 있게 접하며 우리의 상황에 무엇을 가져다가 적용할 수 있을까, 좋은 사례는 무엇일까 더욱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자칫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학술적인 논의가 아니었기에, 실체법은 제정되었는데 구제 시스템은 아직 없을 경우 조례 제정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 상위법과 상충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익 소송이 발달하기 전에 어떤 법 조항을 근거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을지를 비롯한 많은 실제적인 논의들이 오갔다. 존 워다치 변호사가 이야기했듯이 각국의 법제가 각기 다른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법적 문화를 대변하지만, UN 장애 권리 협약을 비준하고 협약의 책임을 이행하려는 국가라면 각 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법제를 발전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권리 구제를 더욱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이 제정되어 차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것인지, 아니면 차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권리 구제 운동의 정점에서 법이 제정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이 실제 상황에 더 가까운 설명이었다고 해도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짜임새 있는 법 마련, 그리고 시행은 가장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글_김고운 (공감 21기 자원활동가)

 

 

※ 공감의 기부회원이 되어주세요!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