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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일 작은 세미나는 '장애인권을 주제로 열렸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문제, 시설의 문제, 차별문제 중 특히 교통권 문제, 염전노예와 같은 강제노동의 문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손해인가까지 다섯 가지 작은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이야기를 시작으로 진행된 세미나에 '가족들 입장에서는 정말 같이 살기 어려울 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강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때로 얼마나 호된 일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지독하게 고된 노동이 되고 소위 '동네망신'이 되며 생명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종래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독한 관계의 균열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강렬한 경험이다. 하지만 세미나가 진행되며 그런 일들을 보완해 줄 '사회적 안전망'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개된 사례는 수원역에서 발견되어 경찰에 의해 행려병자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분의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보호자 2, 또는 지자체 단체장의 승인이 있고 담당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있으면 강제입원의 조건이 만족되고 본인이 원하더라도 보호자 동의 없이는 시설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문제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악용의 가능성이 높고 개인의 자유권을 극도로 제한시키는 강제입원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강제입원의 절차가 바뀌어야 하고, 동시에 이들이 정신병원을 떠나 살아갈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사실 정신병원보다도 더 익숙한 것이 바로 복지시설이다. 그러나 복지시설은 '문제 시설'로 크게 부각되어 왔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이후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pd프로그램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복지시설이라는 사각지대는 비장애인들, 시설에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시설의 존재를 쉽게 잊게 했다. 외면 속에 시설은 거대한 감금시설이 되었다. 이것은 '문제시설'만의 문제이기보다 '시설이라는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시설공간이 지역사회와 분리되어 최소한의 자기결정권이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복지시설도 완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생존권이 보장된다면 자유권을 박탈하는 것이 괜찮은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당사자들은 자유권을 달라고 말한다. 세미나 중에 소개된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라는 책은 감금시설에 감금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책이다. 격리조치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비일상적이고 잔인한 조치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자유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에게 '염전노예' 사건으로 잘 알려진 사건이 있다. 전남 신안군에서 염전을 운영하는 사람이 시각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을 섬으로 데려가 정당한 노동조건들을 무시하고 착취한 사건이었다. 착취당한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주거 및 생활환경을 보장받지 못했음은 물론,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들은 마치 현대판 노예처럼 함부로 다뤄졌다. 그리고 이들이 착취당하는 것을 섬의 다른 사람들은 묵인했다. 오갈 데 없는 '장애인'을 보호해주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제의 기저에는 장애인은 일반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이런 생각은 노예사건처럼 극단적이지 않은 경우에도 드러난다. 한 대학에서는 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사고로 지체장애 1급 장애를 가지게 된 교직원에 대해 지체장애를 이유로 이 교직원을 해고하려고 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해 반발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복직한 것에 대해 보복조치로 말단업무를 맡도록 해 시정조치를 받았다. 이 역시 장애인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안전에 관한 문제도 존재한다. 2014920일 서울 용산역의 승강장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선로로 떨어져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철에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던 시각장애인 안내용 선형점자블록과 스크린도어가 직접적 이유였다. 눈이 보이는 사람의 관점에서 설치한 선형점자블록은 계단을 끝으로 사라졌고, 4m정도의 지근거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이 역시 눈이 보이는 사람의 관점에서 '위험하지 않다'라고 판단된 부분이었다. 그러나 실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안전사고를 당하고야 말았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아주 많은 부분들이 실질적으로 자유권을 제한한다. 장애인들을 시설이나 병원에 감금해서도 안 되지만 사회 속에서 그들의 자리를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규정하고 평등하다고 말해서도 안 되는 이유이다.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안전하게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보조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고,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있는 활동보조인이나 임대주택, 그룹 홈과 같은 주거문제의 해결, 장애인 연금과 같은 최소한의 소득보장이 필요하다. 그들이 가족의 곁에서 가족에게 완전히 의탁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 어린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면 가족의 곁을 떠나듯, 그들 역시 스스로의 삶을 지탱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을 불편하고 이질적인 존재로 여기는 '생각의 방식'도 고쳐져야 한다.

 

  세미나를 들으면서 멍하니 속으로 노래 한 곡과 한 사람을 생각했다. '동행'이라는 곡의 "침묵이 부끄러워 부르는 이 노래로 잠시 너를 쉬게 할 수 있다면"이라는 부분이었다. 함께 생각난 그 애 와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특수반이었는데 옆 반의 특수반 아이와는 달리 유달리 예쁘게 생긴데다 아주 조용해서 언뜻 보기엔 모두와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수련회에 간 날, 간절기였고, 해가 지니 날이 찼다. 그 애는 긴 옷을 챙겨오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그 애를 챙기라는 당부를 받은 반장은 다른 애들에게 옷을 빌리려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아주 살갑게 그 애를 대하던 애들이 저마다 조용해지며 무언의 거부를 표시했다. 그 때의 그 옹기종기한 작은 적막들과 금방 울 것 같던 그 애의 얼굴이 나는 아직도 간간히 생각이 난다. 그리고 옷을 빌려준 사람에게 들려오던 "너 괜찮아?"라는 석연찮은 물음도.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도 쉬게 하지 못했던 그 날의 그 침묵이 어딘지 부끄럽다.

 

글 _ 홍지수 (공감 21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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