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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도에서 공중보건의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친구 녀석에게 필리핀보다도 먼 곳에 산다고 농담을 건네곤 했다. 나에게 신의도는 쨍쨍한 햇볕, 눈부신 바다, 새하얀 소금 그리고 술 한 잔과 농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 섬으로부터, 지난 2월 ‘살려달라’는 한 통의 편지가 서울로 날아왔다. 대한민국이지만 필리핀보다 먼 곳이라 웃으며 말하던 그곳은 더는 아름다운 섬이 아니었다. 약취∙유인, 인신매매, 임금체납, 중노동, 폭행, 감금 등이 자행되는, 내가 아는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이는 비극의 섬이었다.

 

  2014년 6월 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 세미나실에서는 염전 지역 장애인 인권침해 조사결과 보고 및 대책 마련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는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김강원 팀장의 ‘염전노예’ 사건 민간 조사 결과에 관한 발제와 ‘전남장애인인권센터’ 박수인 팀장의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지원과정의 문제와 과제에 관한 발제로 시작했다.

 

  민간 조사는 2014년 2월 14일부터 4월 30일까지 이루어졌다. 총 63명의 피해자를 상담 및 조사한 결과 피해자들 중 등록된 장애인 16명 (25.5%), 장애등록은 되어있지 않았으나, 장애진단이 필요한 피해자 31명(49.2%)로 집계되어 사실상 74.7%의 피해자들이 장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특히 장애진단이 필요한 피해자들이 31명(49.2%)으로 조사된 결과를 통해 염전 지역에 근로하는 대부분의 염전 종사자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입경로의 경우 직업소개소를 통한 경우가 34명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경우, 역전 등지에서 노숙하다가 ‘돈을 벌러 가자.’등의 직업소개소 직원의 권유에 따라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후 직업소개소에서는 염전과 연결되기 전에 연계된 여관 등지에서 머물며 숙식비, 유흥비 등을 과도하게 지출하게 하고 ‘선불금’이라는 명목으로 염전주에게 선불금과 소개비를 받아 인부를 넘긴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진 후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을 해야 했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매월 정기적으로 최저 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는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염전일 이외의 추가적인 근로를 제공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이러한 근로의 대가는 염전주가 취득하였다. 탈출을 시도한 피해자의 경우 주로 이웃주민의 신고로 탈출에 실패하게 되었고, 염전으로 복귀한 피해자들은 염전주에게 강도 높은 폭행과 협박을 당하였다.

 

  김강원 팀장은 직업소개소에 대한 단속과 개선, 지적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자리 창출,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정기적 근로감독과 실태조사, 능동적인 복지서비스 지원, 염전종사자 등록제 시행, 홍보 및 교육, 장애인 학대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 마련, 관할과 책임소재의 명확화,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의 제공, 인권침해 피해자 쉼터 설립, 자립지원 및 취업지원, 현지 정상화를 위한 방안 등을 제안했다.

 

  이어서 박수인 팀장은 신안군, 전라남도, 복지부, 고용노동부, 전남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 국민연금공단, 목포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기관별 대처 현황 및 문제점에 대해 상세히 발제하였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기관별 대처방안에 대한 제언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발제가 끝난 후, 공익인권법 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이문희 사무차장,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김웅년 사무관, 고용노동부 근로정책게선과 최승찬 사무관의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의 주제는 크게 염전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와 염전 장애인의 노동에 관한 문제였다. 나는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의 토론문을 따라가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서 지역이나 농촌 지역에서 장애인 착취∙학대는 왜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가? 노예 장애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와 경찰은 주먹구구식 수사와 일제 점검과 같은 사후약방문식 대응으로 그치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경찰∙검찰의 수사는 세밀하지 못했고, 법원은 이에 대해 무죄 또는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주었다.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사람을 거둬서 먹여주고 재워주며 보살펴주는 선한 사람들이라는 기본인식이 강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할 수도 있고, ‘오죽했으면 때렸을까?’라는 생각에, 그러한 상황에서의 폭행은 훈계 또는 교육 차원으로 행한 것이어서 큰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 염형국 변호사 토론문 中

 

▲ 토론회에서 발언중인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

 

  왜 신의도에서 염전 장애인은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했고, 왜 염전 장애인의 노동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는가? 장애를 가진 ‘그들’은 여전히 이 사회에 ‘폐’를 끼치는 존재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존재가 민폐’인 그들을 거두어 주고 밥을 주고 잠을 재워준 염전주들의 사소한 ‘실수’쯤은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 염전에서 노예처럼 생활한 피해자들이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더 분노하지는 않았을까? 염전주들은 스스로를 염전 장애인들에게 호혜를 베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많은 물음이 부표를 잃은 배처럼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들을 모아 일을 시키지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그들에게 임금을 지불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자신이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키는 것이면서도(“남는 게 없다면, 이득이 없다면 내가 고용해서 일을 시킬 이유가 대체 어디 있겠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폐를 끼치기 위해 남을 고용하는 것이면서도, 그는 자신이 남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을 털끝만큼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어야 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을, 그냥 두면 굶어 죽을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자로 착각한다. 미래의 지불 가능성이 현재의 모든 폐를 지우는 것이다.’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p87~88 이진경 / Humanist

 

  염전주들의 착각과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 속에서 염전 장애인들은 하루에 단지 5시간의 수면을 취하며 쉼 없이 노동했고, 그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도 받지 못했다. ‘폐’를 끼치는 존재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는 사소한 실수로 둔갑해 버렸고,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2014년 대한민국의 노예들은 아주 먼 곳에서 ‘살려달라’는 절규를 담은 편지 한 통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참상을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생활하며 실태를 조사했던 김강원 팀장은 발제를 정리하면서 그분들을 그곳에 두고 나오는 것이 못내 마음이 쓰였다며 힘든 마음을 전했다. 각 정부부처와 민간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염전 장애인들의 피해를 보상해주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도록 지원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미흡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피해자들의 절규가 울림을 만들어내어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3시간여의 긴 토론회를 참관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토론회장 밖으로 나와 길을 걸었다. ‘빛과 소금’에 대해 생각했다. 밝은 빛이 있으면 어두운 그림자가 있기 마련임을 너무나 쉽게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리고 뽀얀 소금을 떠올렸다. 소금은 물에 녹아 세상의 부패하는 것들과 모든 음식을 썩지 않게끔 오랫동안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저 먼 곳 신안에서 서울로 배달된 ‘살려달라’는 편지에 묻어 있는 소금이 부패와 썩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남겨진 자들의 진실한 사과의 눈물과 공감의 눈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비록 무거운 발걸음이라도 한 걸음씩 옮길 수 있지 않을까.


 

글_김민국(19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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