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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더헌트,영화,윤지영

 

지난 2월 대구교도소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강간치상죄로 무기징역을 사는 수감자가 보낸 것이었다. 본인의 소개에서부터 뒤늦게 밝혀진 여죄의 형량에 관한 질문까지 정성 들여 쓴 문장이 편지지 2장에 빼곡했다. 얼마나 정성을 들여 썼는지 편지지 뒷면에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편지에는 답신에 필요한 우표 4장(나중에 확인해 보니 빠른우편을 보내는 데 필요한 비용과 일치했다)도 들어 있었다. 편지를 읽고 답장을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공감에서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안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무도한 사람한테 친절을 베풀기가 꺼려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며칠을 허비하던 중에 ‘더 헌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미련 없이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더 헌트’, 이 영화는 유치원 교사 루카스가 유치원생이자 친구의 딸인 클라라의 거짓말 때문에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리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집단적인 폭력과 배신을 당하는 이야기다. 막판 반전도 없이 단 세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영화가 도대체 수감자가 보낸 편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성폭력을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거 봐라! 아이 말을 어떻게 믿나. 성폭력 피해자라고 하면 무조건 감싸는 여성들은 반성해! 멀쩡한 남자, 나쁜 놈 만들지 말고!”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영화에서 클라라는 “루카스 아저씨한테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보고 아이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면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본 거다. 차라리 클라라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은 어른들에게 돌을 던지는 게 낫겠지만, 최소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덴마크에서 제작된 이 영화와 달라서 피해자의 말을 듣지 않거나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더 많아 문제가 된다.) 

 
엉뚱하게도 나는 루카스의 모습에서 사마리아인을 발견한 것인데, 비록 루카스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지만 설사 누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누가 루카스에게 돌을 던질 권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편지를 보낸 수감자가 비록 무도한 사람이라고 해서 나한테 그러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권리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만약 일반인이 그런 편지를 보냈다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답장을 보냈을 것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세일러문의 착한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또 다른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보았다. 북한의 전쟁 도발과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명단 공개로 때아닌 종북 논란과 간첩 색출 논란이 일어나는 요즘 이 영화가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정의의 이름으로 소위 신상털기가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고, 정보의 신빙성이나 정황은 살피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신상 공개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부치며,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경찰과 국정원이 공개된 명의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내사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지금 이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사 토론에서 보수 우파를 대변한다는 언론인은 ‘남한의 이념을 방해하는 것은 종북’이라고 했단다. 남한의 이념은 누가 규정하는 것인가, 과연 그 실체가 있기라도 한 것인가. 대한민국헌법 전문에서 정하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게 남한의 이념이라면 이러한 이념을 방해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사상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사람들 아닌가.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 영화는 수작이다. 영화가 끝나면 “어머,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이 영화는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숨 막힐 정도로 긴장감이 흐르고 영화에서 빈틈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모든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루카스 역을 맡은 매즈 미켈슨은 과장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래서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영화는 루카스를 겨냥한 한 발의 총성으로 끝난다. 진실이 밝혀지고 시간이 흘러도 마녀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듯이. 역사의 과오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추천한다. 

 

 

글 _ 윤지영 변호사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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